2011년 11월 5일

가방 속에 토끼 7화_집게 속에 물거품


다음날 아침 그녀는 자신이 자고 있는 곳이 침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와이퍼가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유리 밖에 어머니의 모습을 지웠다 만들었다 합니다. 아버지가 차문을 열라고 호통을 칩니다. 잠이 덜깨 서인지 차문이 닫혀서인지 소리는 들리지는 않고 입모양만 과장되게 보입니다. 잔뜩 화가 나신 게 확실합니다. 그녀는 아직 완전히 꿈에서 깨어난 상태가 아닙니다.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차에서 나옵니다. 

차는 밤새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도, 자유로도, 한강대교도 가지 못하고 주차장을 배회했습니다. 그녀는 집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우선 보이는 것이 그녀가 운전한 차의 앞범퍼와 뒷범퍼가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민망한 시선을 좀 더 왼쪽으로 이동시키니 주차장벽에 하얀 선이 보입니다. 어린 아이가 그린 낙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옆에 있던 빨간색 마티즈도 그녀 차의 단짝처럼 옆면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비유가 유쾌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서 탔던 범퍼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좋을 듯합니다. 그녀 아버지 다시 한 번 불호령을 치려고 할 때, 마침 옆차 주인이 출근을 하려고 내려와 그녀는 다행히 뜨거운 욕의 세례를 용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타이밍입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아버지가 대신 이웃남자에게 몇 번씩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수리비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옆차 주인은 그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차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창백해져 버렸습니다. 넋이 나갔다고나 할까요. 그녀도 그제서야 고개를 숙여 이웃 남자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 어머니가 뒤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밀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그날 오후 도로 운전 연수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습니다. 인어공주처럼 말입니다. 차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차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버지 앞에서 도저히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최초의 차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날 저녁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내 서점에서 메모해둔 신간 서적을 보고 세일을 하는 청바지 매장도 둘러봐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날 밤 그녀의 어머니는 화장실 휴지통에서 휴지 사이에 숨어 있는 딸의 운전면허증을 스테인리스 집게로 끄집어냈습니다.


가방 속에 토끼 1화
가방 속에 토끼 6화_감각의 부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