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 보드 입문을 위한 어느 예찬론자의 편지
“재능을 버린 천재는 에로틱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코스모폴리스’의 대사 중에서)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을 이렇게 비틀어보고 싶다.
“보드를 타는 신사는 실로 에로틱하다.”
나무판에 사포가 반짝반짝 발라져 있고 모양은 바나나처럼 길다.
뒷면에는 바퀴들이 이쁜 귀처럼 달려있다(더러 뒷면은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보드 위에 올라서면 보이지 않던 지평이 보이지만 바나나껍질을 밟은 것처럼 벌렁
넘어지기 쉬워서 우리는 겁을 잔뜩 먹고 꼬리뼈 아래로 자꾸 숨으려고 몸을 뺀다.
그러다가 꽈당, 스테이크가 얹어진 접시를 급하게 들고 가다 넘어지는 웨이트리스처럼
벌러덩~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 나무판 위에 올라설 수 있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틱.택.틱.택. 전진할 수 있고, 그래서 바람을 가를 수 있다면, 또 바람을 타고 점프(알리ollie)로 중력을 거스를 수 있다면, 심지어 나무판을 공중에서 꼬챙이에 꽂은 소시지처럼 돌릴 수도 있다면(오 주여!),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들은 그대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선망과 질투의 시선 속에서 그대는 발랄한 리듬감으로 무료한 군중 사이를 우아하게 미끄러져 나갈 수 있다.
당신은 진실로 균형 잡힌 감각의 인간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거다. 도시를 누비고 정복할 수 있다. 어떠한 길도 시시하지 않다. 나무판 위에 올라서는 일에서부터 이 모든 변화는 시작된다. 그대여, 귀를 조금만 기울여 달라!
*
Beginning: 보드 위에 올라서기!
① 장소 물색
시야가 탁 트이는 와이드한 장소 선택.
멋진 남녀가 모이는 곳이면 더더욱 최적.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평지(대리석)에 보드를 내려놓기.
보드가 차분한지 톡톡 건드려보기.
견고하고 차분하면 심호흡을 가볍게 하고 올라탈 자세를 잡기.
(이 대목에서 보드를 우습게 알고 그냥 폴짝 올라타는 일은 절대 금물, 초보자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
② 보드의 꼬리 밟기
아담한 깡통(빈 캔)을 발로 찌그러뜨리는 감각과 힘의 크기로 보드 끝을 누른다. 왼발잡이는 왼발, 오른발잡이는 오른발, 양발잡이는 그날 기분에 따라 발로 지그시 누른다. 그러면 보드의 앞머리가 땅에서 솟아오른다. 나무판의 비상이다(나무판이 과거, 자신이 나무였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기억하는 걸까?) 이때 갑작스런 보드의 발작에 너무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③ 앞머리 누르기
하지만 그대는 비상이 목표가 아니다. 반대편 발로 힘껏 보드의 앞머리를 눌러라!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하게 제압하라! 혐오하는 벌레를 밟아 죽이는 느낌과 힘의 크기로 누르면 된다. 그러면 보드는 다시 땅에 안착하고 그대는 어느새 보드 위에 서 있다. 이 과정은 어느 정도 마법과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제는 밸런스의 문제로 넘어간다. 밸런스를 유지해야 보드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허나 밸런스를 찾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틱. 택. 틱. 택(Tic Tac). 소리를 내며 수없이 나무판을 왼쪽 45도, 그리고 가운데, 오른쪽 45도 각도로 왔다리 갔다리 해야 한다. 지루한 과정일 수 있지만 밸런스를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치 인생과 같다.
④ 푸쉬-오프 (push-off)
하지만 틱택 한 가지만 연습하는 건 지루하고 심심할 수 있다. 짝을 맞추어서 연습할 게 필요하다. 푸쉬-오프(push-off)가 바로 그것이다.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발을 올리고, 기분은 꽃술을 찾는 노란 나비의 기분을 간직하고 달리면 된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신나는 기술, 앞으로 쭉 나가는 연습이다.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상대적으로 섬세하고 가벼운 발을 나무판 위에 올려두고 앞뒤로 발을 밀었다 끌었다 해본다. 보드에 시동을 거는 과정이다. 이 동작으로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라. 이렇게 나무판을 예열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튼튼하고 견고한 발을 이용해 땅바닥을 구르면 된다.
힘 있게 찰 수 있으면 좋지만 처음에는 버려진 깡통을 차는 경쾌한 힘으로 부드럽게 지면을 구르면 좋다. 그렇지 않고 무리하게 힘을 쓰다간 갈 지(之)자로 다리가 찢어질 수도 있다. 물론 모두가 즐거워하고 고소해할 것이다.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두 번에서 다섯 번 정도 발을 구르고 전진하다가 슬며시 발을 지면에서 들어 올리면 그만이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신나는 기술이다. 이렇게 하면 보드 위에서 저공비행을 하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여전히 위태롭긴 하지만 말이다. 서서히 서서히 지면에 놓인 발을 들어 올리면 된다. 처음부터 잘 되진 않지만 당신의 발을 이륙하는
항공기의 바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섣불리 처음부터 보드판에 양발을 올려놓으려 하지 마라. 그저 살짝 지면에서 들어 올리면 된다. 괜찮다. 부끄러워하지 마라. 속도가 불안하면, 균형이 무너지면 멈출 수 있도록 발을 슬며시 들어 올려라.
이때 정말로 중요한 건 보드판 위에 올려둔 발에 중심을 두는 거다. 그 섬세한 발에 체중을 실어야 한다. 그 느낌을 가지려면 평균대 위를 걷는다고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된다. 땅에 디딘 발은 하나의 날개에 불과하다. 그쪽으로 절대 몸을 기울이면 안된다. 중심은 언제나 보드판 위에 발에 두는 거다.
글만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거라 짐작된다. 이제는 직접 해보시라!
생각보다, 짐작보다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벌렁 넘어졌는데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여름 그대여, 일단 나무판 위에 올라서도록,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한 여름 속 은평구 신사동에서 어느 예찬론자가
글_ 황은화_스토리텔러
이미지_기준호_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