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1일

거미가 돌아왔던 날



1


어린 시절 나를 따라다니는 거미가 있었어
어디서부터 따라왔는지는 모르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실 한 구석에 집을 지어놓고  수업 내내 나를 지켜보았고
학원에서도 그랬고
운동장에서도 그랬고
목욕탕에서도 그랬어
물론 방에도 집을 지어 놓고
내 꿈을 망쳐놓곤 했지


행복한 꿈이 허무하게 끝난 건 모조리 녀석의 음모였어.


그러다가 그러다가  지독한 감기를 앓고 난 후에는
동화 속 요정처럼 사라져 버렸던 알록달록한 거미가 있었어.


2


그런데 그 거미를 20년 만에 다시 보게 됐어
우연은 아닌 것 같아
전날 얼마나 마셨는지 숙취 상태로 잠에서 깼는데
거울 위에 매달려서는 나를 비웃고 있는 거야


인사도 했어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인사를 받지 않았어
믿을 수가 없었거든


녀석이 집을 짓고 있어
이유가 뭘까?


내가 다시 어린 아이처럼 보여서일까
내가 서글퍼 보여서


모르겠어
이제는 녀석과 대화가 통하지 않거든


암튼 알록달록 거미가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어
하지만 내게도 계획은 있어


그 거미줄이 견고해지면
더 이상 내 안에 벌레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댓글 1개:

  1. 으아 지켜보고있다 ㄷㄷ
    내 안의 벌레...싸우고 있는 데 쉽지 않네요 에비..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