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4일

배달






우리가 헤어진 건 아무 상관없어. 이젠 괜찮아.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해야겠어. 넌 나와 헤어진 이유를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어. 그냥 끝이라고 선언했어. 마치 판결이라도 하듯 선언을 했어.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너의 표정. 그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줄 알아. 그날 이후로 아침마다 서지도 않아. 뭐긴 뭐겠어? 심각한 성적 장애까지 일으키고 있다고! 내가 너와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지금이라도 말해줬음 좋겠어.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야. 난 네가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진심이야. 넌 변했어. 그것도 아주 고약하게~ 오바마가 김정일 흉내를 낸다 해도 너처럼은 아닐 걸. 넌 정말이지 고약하게 변했어. 지금의 너를 봐봐. 거울 앞에서 천천히 하나하나 뜯어보라구. 너다운 건 하나도 없을 거야. 예전에 너는 흔적조차 없어. 변화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넌 좋은 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구. 니 잘못은 아냐. 전적으로 니 옆에 붙어 있는 기생충이 문제지. 누군지 몰라? 니 옆에 스폰지밥 티셔츠를 입은 재수없는 여자애 말야. 펑크 헤어스타일에, 해골이 그려진 흰색 양말과 흰색 스니커즈를 신는 모델 시험에서 매번 떨어지는 기생충. 알았어! 이름을 말할게. 콕 찍어서 우주라고 말할게.


난 우주라는 년이 맘에 안 들어. 구역질이 나. 니가 입고 있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너덜너덜한 빈티지 패션과 보라색 머리칼 모두 그녀의 작품이지. 너의 긴 머리를 싹둑 자른 테러리스트도 그 교활한 페미니스트이고. 짐작이 간다. 꾐에 넘어가 배꼽에 피어싱도 했지. 정말 끔찍해. 너의 전 남자친구로서가 아니라 너를 알고, 너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야. 또한 너와의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기에 상관할 수밖에 없어. 예전에 너는 정말 예뻤어. 너의 자연스런 모습은 대체 어디 간 거니?


오늘 사주를 보러 갔지? 어떻게 아냐고? 들었어, 아니 목격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내 말 들어. 뭐라고 하디? 취업이 잘 된대, 돈은 많이 번대, 결혼은 언제하면 좋대? 혹시 유학에 대해서 물어본 거야? 캐나다로 가고 싶어 했잖아! 너 언제부터 이런 거 믿었니? 내가 복권만 사도 벌레 보듯 눈을 흘기면서 미신이나 운이 젤로 위험하다 하면서, 교회니 십자가니 시편이니 하는 것들을 반복하곤 했잖아. 근데 사주를 보러 갔다고... 기가 막혀!


우주란 년 조심해. 걔를 멀리 해 제발! 솔직히 까놓고 말할 게. 걔가 나랑 헤어지라고 했다며, 우리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필사적으로 말렸다며... 도대체 그 년이 뭐야? 그 말을 다 믿은 거니, 다 지어낸 얘기인 거 몰라. 우주인지 안드로메다인지 걔가 널 비웃은 거에 불과해. 널 차지하려고 날 모욕한거야. 비겁한 짓이야. 넌 속은 거고. 소정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 우리 사이가 언제부터 틀어진 건지. 나는 우주 처음 볼 때부터 느꼈어. 눈빛이 음흉한 계집이야. 걔는 정말 니가 좋아서, 아껴서 그런 게 아니야. 나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니까 내 친구 태식이도 형석이도 다 그랬어. 니가 신은 가죽 부츠 정말 최악이야. 니 다리가 얼마나 두꺼워 보이는 줄 알아.


묻고 싶어. 니네 둘이 키스한 거니? 니네 둘이 사귀는 거야? 지난 금요일에 홍대 클럽에서 키스했다며? 진심으로 한 거야, 장난이야, 아님 호기심? 어서 말해! 소정아, 너 정말 많이 변했어. 난 그걸 견딜 수가 없어. 도대체 우주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한 거야?

 걔가 나에 대해 뭐라고 떠벌린 거야? 무슨 얘길 한 거야? 꼭 알고 싶어. 그 독사 같은 입이 얼마나 간교한 말을 한 건지 말야.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헤어진 건 아무 상관 없어. 난 정말 니가 걱정이 돼 죽겠어. 그 기생충을 조심해! 부탁이야!


그는 그렇게 한 여자와 통화를 끝낸 후 세면대 거울을 쳐다봤다. 너무 초초해 이를 닦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닦는지 치약 거품이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넥타이를 목에 걸기 전에 두 손으로 지그시 목젖을 눌러 보았다. 섬뜩함은 없었다. 하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줄 하나에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연약한 자신의 심폐술을. 약물 따위는 싫었다. 신물이 났다. 더 살 이유는 없었다. 매듭을 목에 걸었다. 실크 넥타이의 부드러운 감촉이 목을 타고 내려왔다. 작은 방울뱀이 목을 타고 내려오는 오싹함이 전해졌다. 곧 의자를 차야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볼륨 조절이 안되는 벨소리는 집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화장실문을 닫아두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그는 벨소리를 무시하고 화장실문을 닫았지만 침묵이 깨지자 다시 의자 위로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초인종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울리지 않던 벨이 가장 조용해야 할 순간에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 생각이 들어 죽음의 사자가 벌써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했다. 미친 부엉이가 우는 소리같은 벨소리. 아무튼 사람이 됐든, 저승사자가 됐든 문을 열어줘야 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여니 치킨배달이었다. 배달원이 비옷을 입고 포장한 치킨을 내밀었다. 몸의 열로 인해 김이 어깨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 시켰는데요.”

“계산은 하셨습니다.”

“안 시켰는데요.”

“맛있게 드세요.”

배달원이 듣기에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그는 이내 빠른 속도로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불러보려 했지만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약기운 때문인지 목에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치킨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자살을 해야 하는데,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해 봤다. 양념 치킨에 콜라 하나, 갈색 피트병에 채워진 맥주.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엉뚱하게 신체가 반응하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고 마지막 의식의 장소인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의자에 다시 올라섰다. 그런데 손끝에 묻은 치킨 양념냄새 때문에 마음이 왠지 모르게 복잡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잘못된 배달이라 배달원이 돌아올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당장 죽기가 쉽지 않을 거였고, 설사 죽는다 해도 처음 보는 배달원에게도 난처한 일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일찍 발견되기도 싫었다. 죽는다면 한 달이 더 돼서 2011년이 되는 시점에 발견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지나간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셈 해보고는 그는 소파로 돌아왔다.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각을 잡고 앉아 초인종이 다시 울리기를 기다렸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나보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로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구체적으로 풍경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때가 그에게는 구체적인 풍경이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그는 커튼을 젖혀 밖을 내다보진 않았는지 몰랐다. 왠지 밖은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10분이 지나자 갈등이 시작됐다. 갈등을 이기기 위해 그는 텔레비전을 켰다. 하지만 틀자마자 바로 껐다. 웃음소리가 싫었고 홈쇼핑이, 란제리가 싫었다. 다시 침묵. 20분이 지났을까 그는 주인을 잘못 찾아온 닭을 뜯기 시작했다. 톡 쏘는 매콤한 맛에 먹자마자 입에서 쉬쉬 소리를 내야했다. 내친 김에 맥주까지 다 마셔 버렸다. 맥주는 시원했다.


주어진 음식을 깨끗이 처리했을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일순간 졸음이 몰려왔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오히려 바닥에 누워버렸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잠이 셀 수 없는 별처럼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저항하지 못하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바닥에서 무엇인가가 그를 끌어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영원한 잠으로 가는 통로와 가까이 닿은 듯한 예감이랄까. 그것이 아니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초인종은 계속 울렸고 그는 힘겹게 영원으로 가는 통로 앞에서 몸을 일으켜야했다.

배달원이 아닌 여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얼마난 급하게 올라왔는지 맨발이었다. 파란 팬츠에 짱구가 그려진 흰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목소리는 약간 흥분조였다.


“치킨 왔지요?”

“네”

“먹었어요?”

“네”

“짜증 나”여자는 복도 쪽을 보고 ‘짜증 나’를 외쳤다. 상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님을 약간은 강조하고 싶은 의도로 보였다.

“왜 드셨어요?”

“아, 그게, 거, 그...”

순간 발음이 꼬였다. 무슨 말을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은 데다 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짜증 나, 술도 먹었어요?”

“네”

“왜 드셨어요?”

“아, 그게, 거, 그...”

'왜 먹은 거지?’ 그는 스스로도 대답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손부채질을 할 때 그는 여자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약간의 휴지부가 생긴 셈이었다. 여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있었다. 흰 셔츠 사이로 유두와 가슴의 윤곽이 보였다. 그는 침을 삼켰다.

“이마에 별 있어요.”

“예?”

“이마에 별 있다고요”

그녀는 그의 이마를 가리켰다. 좀 진정이 됐는지 약간은 누그러지고 느려진 말투로 그의 이마에 별을 가리켰다.

“이마에 별 있다고요”

“아! 예...”

“제가 재수가 없는 거죠. 그런 거죠. 그런데요, 그 쪽도 잘한 거 없는 거 아시죠?”

“네”

여자는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짜증 나’가 두 번 더 들려왔고 쾅하고 문이 닫혔다. 알고 보니 바로 아랫집 여자였다. 그는 여자가 그녀 집에 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거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복도에서는 희미한 빗소리만 들려왔다.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여자는 낯설지가 않았다. 자주 봤던 얼굴이었다. ‘어디에서 봤더라?’ 

그녀의 쩔쩔매는 동시에 짜증내는 표정을 떠올려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통쾌했다. 졸음이 다시 쏟아져 내렸다. 주술에 걸린 것처럼 눈앞이 흐려졌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음미할 새도 없이 그는 소파에 앉은 채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이마에는 별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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