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9일

여름을 피해 로테에게



여름을 피해 로테에게


여름이 두려워 여름을 피합니다. 사랑만이 유일한 도피이지만 나는 사랑 없이도 이렇게 피하고 숨습니다. 당신의 이름 속으로, 당신에 대한 그리움 속으로 말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단지 핑계일 뿐, 나는 사람들과 가깝지만 그들이 모르는 곳을 방황하는 존재임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신의 파란 불꽃은 여전히 나의 존재를 확신시키며 살았지만 죽어 있는 영혼들을 비웃습니다. 모든 게 쉽게 사라져가는 이 시대는 나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고, 로테! 당신도 그건 마찬가지겠지요.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위로는 음악이 아닌가 합니다. 고통 받은 인간들의 음악! 고통은 성경의 잠언이 아니라 고통의 거울을 볼 때 더 큰 위로를 받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타오르는 트럼펫이나 톰 웨이츠의 찢긴 절규,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윤이상의 찢겨진 이상(理想), 이 땅에서는 김광석이나 백현진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어젠 프랑스로 유학을 간 친구와 연락이 되었답니다.



그는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의 말에 전도되어 나 역시 어젯밤은 ‘I’m a Fool to Want You’를 듣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수많은 재즈 여성 싱어들이 탁월한 미모와 가창력으로 우리의 우울한 감성을 자극하고 있지만 지난 시대의 빌리 할리데이의 서글프고 진한 슬픔의 고백만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친구와 나를 위로합니다. ‘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였다’고 말입니다. 로테, 여전히 나는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돼지 기름이 흰 소매에 튀고/ 젓가락 한 벌이 낙하를 할 때/ 니가 부끄럽게 고백한 말들/ 내가 사려깊게 대답한 말들이/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백현진의 ‘학수고대했던 날’의 가사 중 일부)

만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가끔씩 그때의 당신을 애처롭게 찾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 역시 백현진의 노래 가사처럼 당신의 모든 걸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당분간만이라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어떤 몽상도 하지 않고 현실적이고 분별 있는 인간이 되어보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텅 빈 극장에서 오늘 내가 본 영화는 프랑스 감독 에릭 로메르의 <로맨스>란 영화였습니다. 당신도 잘 알 듯 그 감독은 평생을 남녀의 사랑, 그 미묘한 감정의 신비에 대해서만 영화를 찍었던 감독이지요. 위트와 기지가 돋보이는 해피엔딩을 뒤로 하고 극장을 나오며 묘하게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하면 첫사랑의 풋풋함을 잘 그려내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초속 5센티미터>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겠지요. 여기서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고 합니다. 재미있으면서 감성적인 표현이지요. 어찌하여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요? 그건 그 영화의 감독이 세상 누구보다 벚꽃에 애착을 갖고 있으며 벚꽃을 오래 쳐다보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무지한 소년과 소녀(주인공)가 서로에 대한 설레임 속에서 두 손을 맞잡고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멈추고 싶었지만 끝내는그 시간과 공간에서 멀어져 가야만하는 인생. 인생은 그렇게 아름다운 벚꽃나무의 풍경에서 멀어져 가는 과정만 같아 슬펐던 영화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이 그저 무용無用한 환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맞는 말입니다. 헛된 사랑은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믿습니다.

사랑의 무용 보다는 사랑의 유용과 가능성을 믿습니다. 파스칼처럼 내기를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사랑은 여전히 강력한 삶의 목표이자 힘이며, 근원입니다.


그들이 비난하는 사랑은 본질적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시대가 사랑이라 표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사실상 사랑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욕망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통해 소유를 얘기합니다.인간들은 미美를 소유하고자 열망하고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소유와는 다릅니다.


사랑은 부재와 빈곤, 결핍을 채우는 강력한 우주의 에너지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사랑을 사물화시켰습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축복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타락이 숨어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위대하게 채워 갑니다. 상대방의 미소나 손짓, 눈짓 하나가 우주를 채웁니다. 에릭 로메르의 말대로 ‘사랑은 오직 사랑 안에서만’ 만족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너무나 강력하여, 사랑은 도리어 파괴와 전복의 진원지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 충만해지는 그 순간, 사랑에 빠진 자는 자신을 파괴해야 합니다.

 자의식과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고뇌를 맛봅니다. 자신과 싸우며 내면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벽을 넘으면 사랑하는 존재의 지평이 펼쳐집니다.

 자신 안에는 없는 미지의 영역이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욕망들은 이와는 다릅니다. 자신을 포기하거나 극복할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굳건히 지켜나갑니다.


로테, 당신이 편견 없이 보여준 희생과 감사의 손길, 따뜻한 입술의 언어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랑은 의심 없는 즐거움을 주며 스스로를 꾸밀 줄을 아나 인간을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초라하고 불안한 영혼입니다 하지만 당신으로 인해 여전히 내 마음은 어둠 속에서 빛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변하고 있습니다. 매일 거울 앞에서 실망하면서도 좀 더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 예찬론자가 들끊고 구애의 발라드가 유행하며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존중받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이 부재하는 시대입니다.


로테, 말없이 미소 짓는 이름이여! 어리석음과 무지에 빠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사랑은 여전히 나를 태우는 소중한 불꽃입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내 인생의 오늘인 로테, 여전히 사랑합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나는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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